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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지쳤다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우리詩》2022. 12월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에서

♧ 나는 날마다 무덤을 짓는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하루를 접는다 하루는 또 하나의 종점 나는 하나의 무덤을 짓는다 문 연 채 죽는 것이 싫어 저녁이면 대문부터 창문까지 닫고 다 걸어 잠근 고립무원의 지상낙원을 만드노니 둘이 살다, 셋, 넷, 다섯, 이제는 다들 떠나가고 나만 혼자, 홀로, 살다보니 집이 천국의 무덤이 되었다. ♧ 단현斷絃 줄 하나 끊어지니 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 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 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 물 흐르듯 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 두 집 건너 살아라 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 노량으로 가야지. ♧ 적멸보궁 밤새껏 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 부산한 고요의 투명함 한 마리 까치 소리에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