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메밀꽃 메밀꽃 洪 海 里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달빛과 달빛 사일 오가며 천상에서 바랜 옥양목 한 필을 산간에 펼쳐 널고 있다 겨드랑이 아래로 사태지는 그리움 저 서늘한 불빛으로 달래이며 천년을사루어도 다 못할 정을 하얀 꽃으로 피우고 있다 달이 이울면 산이 쓸리고 반쯤 젖어 흔들리는..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춘란 한 촉 춘란 한 촉 홍해리(洪海里) 동대문에서 종로에서 남대문에서 길가 먼지를 쓰고 단돈 200원에 팔리는 춘란 한 촉 멱서리 때기로 팔려와 다시 아낙네 손끝에서 창녀처럼 막막히 기다리며 저 난 곳 바람소리도 잊고 뿌리가 말린다 아아 가난하게 시드는 감청빛 향기. - 시집『우리들의 말』(19..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가을빛 가을빛 홍해리(洪海里) 새벽녘 빗소리에 잠이 깨이다 비 온 다음 투욱 툭 튀어나오는 가을빛 맑은 살의 깊은 잠을 위하여 햇살은 부숴지고 있느니 이 따스함이여 솔잎 사이 부드러운 바람은 영글어 혼자서 생각으로 일어서고 있느니 반야여 별빛도 익어 뚜욱 뚝 떨어지는 가을밤 은빛 이..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생명 연습 생명연습 홍해리(洪海里) 간밤 잠 속을 날던 목이 긴 학이 하늘 어느 곳을 어지러이 날다 새벽에 돌아와 풋풋풋 깃을 치고 있다 비바람은 몇 번인가 설레이다 가고 굳은 잠의 사원도 문이 열렸다 달빛도 어느 만큼 달아나고 허공중 어디 쯤서 새벽산이 울고 있다 아득하던 꽃소식도 머리..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하늘의 무덤 하늘의 무덤 홍해리(洪海里) 만나지 못한 너의 넋을 하늘에 띄우고 돌아와 아내는 밤새도록 앓고 있다. 햇빛 한 번 못 보고 햇빛에 풀려버린 너의 눈빛이 파아란 하늘못이 되었다. 너의 눈썹이 달이 되고 너의 입술이 바람이 되고 너의 손가락이 꿈이 되어서 햇귀같은 볼과 상긋한 숨소리..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안개꽃 안개꽃 洪 海 里 살빛 고운 아기들이 꿈속에서 젖투정을 하고 있다 배냇짓으로 익은 하늘빛 아기들의 마을에는 늘 안개꽃이 피어 있다 무릎이 퍼렇도록 기는 토끼풀꽃 목걸이로 젖어 있는 울음 하나 고사리 손을 흔들어 흰 구름장을 목에 걸고 종종종 기고 있다 안개꽃 핀다. - 시집『우..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불혹 불혹 홍해리(洪海里) 밤 사이 전신에 형성되는 기압골 - 한 때 개이다 다소 구름 구름장 사이의 간헐적인 달빛 심한 바람 구름이 몰리더니 비가 내린다 사지가 녹아 내린다 억수같은 빗소리 잠은 엷고 가벼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다 파도는 높고 열이 올라 - 내일 모레는 불혹 - 시집『우..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슬픔 슬픔 홍해리(洪海里) 너를 보내고 돌아와 난 앞에 앉다 그믐달처럼 청청한 잎마다 흘러내리는 달빛 수묵색 고요 무너져 내리는 끝없이 무너져내리는 아아 나의 벼랑 뜨거운 칼끝에 녹아 흐르는 눈물 왕모래 틈으로 뻗는 육질근 바람은 휘몰아쳐 모래알도 날려버리고 천지간에 들어난 아..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홍조 홍조紅潮 홍해리(洪海里) 개나리꽃 필 무렵 여학교 근처 처음으로 달을 안는 소녀들 끓는 소리 노오랗게 터지고 있다 새벽녘 볼이 바알갛던 아내의 젖무덤가 아지랭인 하늘ㅅ가에 까지 닿았다 다시 스러져 봄은 오고 퍼렇게 물 오르는 나뭇가지 꽃망울 사태. - 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
<시> 자하 II 紫霞자하 ·2 홍해리(洪海里) 그대 말씀 하나가 가슴에 와서 돌이 되었다 그 돌이 자라서 섬이 되더니 눈 뜨면 그 위를 떠도는 바람으로 끓고 밤이면 기슭만 끝없이 핥다 끝내는 동백꽃이 피고 말았다. - 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집『우리들의 말』1977 200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