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인의 일생 내 시인의 일생 洪海里 왜 쓰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다 글을 쓰는 일이 쓸데없는 것을 끼적대는 것임을 한평생이 다 지날 즈음에서야 겨우 깨닫는 게 시인이구나 시 한 편 쓰지 못했다 이게 내 시인의 한생전이었다 입때껏 마냥 잘 놀았다, 詩랑! - 월간 《우리詩》(2020. 11월호). * 청딱따구리 : http://blog.daum.net/ch66da에서 옮김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2.24
한 편의 시를 위하여 한 편의 시를 위하여 洪 海 里 반세기 넘게 시를 써도 아직 시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여직 알지 못한다 한 백년 시에 매달리면 꼬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오늘 새벽에도 나는 잠든 샘을 깨워 정화수를 긷는다 한 대접의 신선한 물 정갈한 마음으로 장독대에 올린다 한 편의 詩를 위하여! 포근한 칼끝 갈매기 한 마리가 칼끝 같은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시린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서는 이만한 안식처도 없습니다. 불안해 보이지만 갈매기에게는 먹이를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해시 추암촛대바위 -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동아일보 2020. 2. 12.)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2.12
정답 정답 洪 海 里 "내가 왜 좋아?" 하고 너는 묻는다 "그냥!" 하며 나는 네 입을 덮는다 바라보던 꽃들이 "맞아, 맞아!" 호호 웃고 있다 날아가는 새들이 "좋아, 좋아!" 노래하고 있다. 사랑의 자물쇠 세상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폐쇄회로(CC)TV. 하지만 ‘사랑의 자물쇠’를 걸고 싶은 연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인가 봅니다. 높은 기둥까지 자물쇠를 걸어 놓은 연인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서울 남산에서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동아일보 2020. 2. 17.)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2.12
정곡론 이후 정곡론 이후 洪 海 里 시집『정곡론正鵠論』이 나온 날 밤 활쏘기를 배우겠다고 양궁장을 찾아 신청서류를 작성하는데 여직원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선수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잘 쏘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몸과 마음을 수련코자 한다 해도 막무가내 활은 잡아보지도 못한 채 이 나이에 무슨 놈의 활이람 내게 활쏘기가 당키나 한가 하며 잡담만 늘어놓다 꿈을 깼다 아무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정곡론을 다시 써야 할까 보다. * 퇴고 중인 초고임. 4억원대 스위스 ‘예거 르쿨트르’ 전시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명품관에 전시된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의 ‘듀오미터 스페로투르비옹’(4억 원대). 갤러리아명품관은 29일까지 예거 르쿨트르 특별 전시회를 진행하며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 갤러리아명품관 ..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2.07
월간《우리詩》편집실 풍경 월간《우리詩》편집실 풍경 洪 海 里 여섯이 잡지 교정일을 하다 점심 때가 되자 중화요리로 결정하고 음식 주문을 받는다 여섯이 다 각각이다 '중국식 냉면 / 여연如然 자장면 / 임보林步 짜장면 / 은산隱山 해물잠뽕 / 하정下正 삼선우동 / 후조後凋 해물볶음밥 곱배기 / 임파林波 싸구..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2.03
몸 몸 洪 海 里 한평생 적어온 유일한 이력서 빼고 보탤 것 하나 없는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겉부터 속까지 거짓 없는 '나' 살아 있는 '나'.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1.23
아버지 아버지 洪 海 里 별은 외롭다 스스로 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나이 들면 그렇다 눈깔사탕 빨주노초. 오랜만에 만난 눈깔사탕입니다. 어렸을 때 볼이 터지도록 입에 물고 있으면 세상 남부럽지 않았는데요. “그 대신 양치는 꼭 해야 한다”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 송은석 기..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1.22
제비꽃 피다 제비꽃 피다 洪 海 里 겨우살이 식량이 바닥나는 겨울 막바지 춥고 배고픈 북녘 오랑캐 말발굽 소리 집집마다 뒤져 식량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짓밟았다 말발굽 자국마다 피어난 꽃 오랑캐 오랑캐 오랑캐꽃 가련하고 슬픈 꽃 춥고 배고픈 꽃 서럽고 아픈 꽃 연한 보랏빛으로 지저귀는 제비 올 때 피어나는 지지배배 제비꽃 제비꽃 핀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01.14
새해 선물 다시 태양은 떠오른다 우여곡절도 많고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지나고 2020년이 밝아옵니다. 캄캄한 밤이 지나면 찬란한 해가 반드시 떠오르듯, 올 한 해 우리 삶에도 다시 희망이 떠오르길 기원합니다. 일출을 담은 사진 50장을 한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강원 동해시 추암촛대바위 - 동해=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동아일보 2020. 01. 01.) 새해 선물 洪 海 里 2020년 1월 1일 가슴 설레는 새해 선물은 한 해라는 시간의 백지 한 장. 차가운 머리로 뜨거운 가슴으로 정갈한 손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뜨거운 사랑의 언어로 진실되고 정확한 언어로 시를 엮어, 자유와 생명과 자연을 노래하고 사람과 사랑을 그리고 노래하리라. 삼백예순다섯 장의 가벼운 깃털로 시는 눈부신 날..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2.29
몸탑 몸탑 洪 海 里 하루 이틀 사흘 쌓아 올리고 또 쌓은 탑 하 · 루 · 하 · 루 부서져 삭아내리고 기울어지다 마침내 허물어져 눕고 마는 살아 있는 탑 활활 타올라 훨훨 날아가거라 저 무한 천공으로! * 빈센트 반 고흐, <슬픔>. 1882년, 석판화, 38.9x29㎝,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