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隱山에게 은산隱山에게 洪 海 里 물이 넘실거리지 않아도 출렁이는 파도를 듣고, 나뭇잎 살랑대지 않아도 바람 소리를 보노니! 통나무 눈사람 통나무로 만들어진 눈사람이 빨간 목도리를 매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짜 눈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2.14
불면증 불면증 洪 海 里 수천 마리 흰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도록 가고 있었다 수만 마리 꽃뱀이 꼬리에 꼬리를 잇고 날 새도록 가고 있었다 땅 끝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내닫고 있었다 서둘러 저무는 동짓달 기나긴 밤 불면 날아가버릴 가벼운 잠이여! - 월간 《우리詩》2021. 12월호. **********************************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쿨디가=신화 뉴시스입력 2019-04-29 물고기들이 번식을 위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도시 쿨디가에 있는 벤타 래피드라는 폭포입니다. 해마다 봄만 되면 폭포에 날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종족 번식의 힘은 위대합니다. - 쿨디가=신화 뉴시스(동아일보 2019. 4. 29.)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2.13
어슴새벽 어슴새벽 洪 海 里 동짓달 보름 어스름 새벽 세 시 「너에게 인생이 춤추고 있다」 시 한 편 써서 "명편이다, 명편이야!' 하며 낭독하는데 첫 행도 못다 읽고 잠이 깼다 어찌 '네 인생이 춤추고 있다'가 아니라 '너에게 인생이 춤추고 있다'일까 내일이면 나이 팔십 한평생이 새벽녘의 일장..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2.11
꽃 피는 날 꽃 피는 날 洪 海 里 겨우내 어찌 참았을까 홀딱 벗고 싶어 스스로 불 밝히고 놀고 있는 세상을 여백으로 채운 막무가내 투망질에 숨가쁜 한때 꽃잎날개 가볍게 난다 살맛 좋다고 살맛 난다고. *우이동 4인방 : 좌로부터 이생진, 채희문, 홍해리, 임보 시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1.30
겨울밤 소네트 겨울밤 소네트 洪 海 里 창밖에 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 밤 화로에 묻은 고구마 호호 불며 껍질을 벗길 때 입보다 먼저 눈으로 듣던 침 넘어가는 소리 손자에게 건네는 노란 몸뚱이, 눈을 털고 떠 온 동치미 국물, "어, 시원타!" 유년의 고향집에 소리 없는 시 한 편이 한 장의 그림으로 추억 속에 놀고 있네. - 월간 《우리詩》2021. 12월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1.22
<시> 두근두근 두근두근 洪 海 里 한 편의 시는 푸른 느낌표 그대의 가슴에 정성 다해 마지막으로 찍는 내 마음의 종지부. 하늘 키스 파란 하늘에 그림을 그린 듯 연인의 달콤한 한때를 아름답게 표현했네요. 찬 바람이 불어올수록 연인은 더욱 가까워지고, ‘싱글’의 옆구리는 콕콕 시려오겠죠. ―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1.12
뭣 하는 짓인지 뭣 하는 짓인지 洪 海 里 팔십 년 살다 보니 정말 내가 뭘 하고 있는가 생각이 멀고 이걸 하면서도 그런가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또 그런가 하다 보니 한평생이 다 새 버렸다. 한겨울 참나무 우듬지 당당한 겨우살이처럼 남은 나의 겨우살이도 푸른 성채의 삶이기를. 네온사인 고속도로..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1.08
난의 기원 난蘭의 기원 洪 海 里 난은 하늘에 사는 새였거니 해오라비 갈매기 방울새 제비였거니 어쩌다 지상으로 추락했는가 하늘을 날다 지쳤는가 지상이 그리 그리웠는가 어찌 땅으로 내려왔는가 나무에 내려앉기도 하고 바위에 걸치기도 하고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느니 날개는 꽃이 되고 발은 뿌리가 되고 몸은 잎이 되었느니 새들이 하늘에 쓴 시 땅에 내려 꽃이 되었다 난꽃은 새들이 쓴 시가 아닌가 새들이 추는 푸른 춤이 아닌가 새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 월간 《우리詩》 2021. 12월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0.09
시인의 말 <시작 노트> 나에게 하는 말 1. 시 한 편으로 평생 시인이 있다 천 편의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한 편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시인이 아니다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바른 시인이다 해마다 명편이 태어나기도 한다 태작만 태질치다 한살이를 끝내는 이도 있다 일평생을 한 해로, 아니면 일년..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1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