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408

난의 기원

난蘭의 기원 洪 海 里 난은 하늘에 사는 새였거니 해오라비 갈매기 방울새 제비였거니 어쩌다 지상으로 추락했는가 하늘을 날다 지쳤는가 지상이 그리 그리웠는가 어찌 땅으로 내려왔는가 나무에 내려앉기도 하고 바위에 걸치기도 하고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느니 날개는 꽃이 되고 발은 뿌리가 되고 몸은 잎이 되었느니 새들이 하늘에 쓴 시 땅에 내려 꽃이 되었다 난꽃은 새들이 쓴 시가 아닌가 새들이 추는 푸른 춤이 아닌가 새들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 월간 《우리詩》 2021. 12월호.

늦가을 풍경

늦가을 풍경 洪 海 里 1 늦가을 이슬아침 홀로 가는 이 막막한 슬픔 같은 푸르른 하늘 2 더 못 줘서 미안한 늙은 어머니 멈칫멈칫 떠나는 못난 자식들 참새 잡는 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추수철입니다. 농민들이 참새를 쫓기 위해 가짜 매를 설치해 놓았네요. 허수아비를 우습게 보는 참새에게도 효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강원 원주시에서 -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동아일보 2019. 11. 01.)

그녀 흔들다 가다

그녀 흔들다 가다 洪 海 里  한 바람 일으키던여름 한철이 한평생이었다 화장은 다 지워지고민낯을 드러낸 채살은 이미 흐물흐물해지고뼈마디마다 골다공증으로 삐걱거린다 설미쳤는지 실실대며힘 없는 하품만 뱉고 아무리 흔들어 대도바람을 피우지 못한다 청춘의 한때는 가고쿨럭쿨럭 헛기침만 뱉어내다풍력이 다해 이냥 헐떡이고 있다.                                                                                                                                                                            나이 겨우 한 살인데아무리 흔들어 대도바람은 나지 않고쿨럭쿨럭 기침만 온몸으로 뱉고 있다..

길을 널다

길을 널다 洪 海 里 갈 때가 되면 갈 데로 가고 올 때가 오면 올 데로 오는 길 위의 삶은 길을 버리는 것 길이 없어야 찾아오는 삶 남편 그늘 십 리를 가고 아내 빛은 백 리를 가는 사랑이라는 아픔 아픔을 지닌 사랑 아픔의 흔적은 아름답다 말귀를 잡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맬 때 말은 이미 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린다 - 월간 《우리詩》 2021.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