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403

늙마의 봄 · 2

늙마의 봄 · 2 홍 해 리 나일 먹고 또 나이 들어도 그림 속 떡을 보고 침을 흘리고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할 일인데 왜 아직도 내 배가 아픈 것인가 어느새 깨복쟁이 멱감던 개울가를 돌아보고 사철나무 서 있던 우물가를 서성이는 늙마의 봄이 오니 볼 장 다 보고 나서도 휘영청 달 밝은 밤이 되면 하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데 봄이 오면 정녕 고목에도 꽃이 피는 그곳으로 발밤발밤 가 볼 것인가 발바투 달려갈 것인가 무한 적막은 어떻게 잡고 영원은 또 언제 그릴 것인가 봄이 와도 봄이 아닌 나의 봄이여. - 계간 《창작21》 2024. 봄호.

지금 여기

지금 여기 洪 海 里 이곳 내 생生의 한가운데 어제도 내일도 없는 거지중천居之中天 별 하나 반짝이고 있네. 지금 여기 홍 해 리 이곳 내 生의 한가운데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네 거지중천居之中天에 별 하나 반짝이고 있네. *ㅔ : 데/ 네/ 에/ 네 지금 여기 홍 해 리 이곳 내 生의 한가운데 어제도 내일도 없는 거지중천居之中天에 별 하나 반짝이고 있는. * 데/ 는/ 에/ 는.

꿈 洪 海 里 하늘 가득 별이 깨알같이 박여 있었다 문 밖에 하얀 아기 토끼 한 마리 오들바들 떨고 있어 품에 안아 방에 들여놓았다 계묘년癸卯年 섣달그믐 밤이었다 푸른 용이 동녘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 2024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靑龍]의 해. 나이 들어 꾸는 꿈은 대부분 지나간 시절에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생애 처음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이 온통 별로 꽉 차 반짝이고 있었다. 별들이 깨알처럼 박여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문 밖을 보니 아주 작은 하얀 토끼가 바들바들 오들오들 떨고 있어 얼른 안아서 방 안에 놓아 주었다. 2023 계묘년 토끼해가 저물고 오는 해는 푸른 용의 해이니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청룡의 기운이 샘솟기를 기원해 본다. 이 글은 일기가 아..

미꾸라지

미꾸라지 洪 海 里 이미 논은 누렇게 익어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다 논과 논 사이 푸르게 바랜 수로에 밀집모자가 떴다 베잠방이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린 채 허리를 굽혀 움직이는 손길이 날래다 미끈/미끌 빠져나가는 허탈에도 꽉 찬 힘이 되살아나는 가을은 미꾸라지 한 마리로도 충만한 풍경이 된다.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조기어강 목: 잉어목 과: 미꾸리과 속: 미꾸리속 종: 미꾸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