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베개[鵲枕] 까치베개[鵲枕] 洪 海 里 세상을 덮을 꽃 한 송이 가슴으로 품었다 꽃이 피면 얼마나 가나 질 때 되면 지고 마는 꽃 하늘 가릴 꽃 땅을 품은 꽃 가슴, 가슴으로 품어도 세상 없으면 세상없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25
불면증 불면증 洪 海 里 내가 나와 끝없는 격투를 벌이고 있다 구름 위에서 사막에서 칼날이 부딪는 날카로운 소리 따라 어느새 밤이 새고 희붐히 날이 밝고 있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24
백모란 백모란 洪 海 里 첫날밤 치른 초록 궁전, 외동공주의 백옥 침상. * 해마다 5월이 되어 뒷산 꾀꼬리 노랫소리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면운수재韻壽齋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백모란이 피었다고. 막걸리 한 통을 메고 운수재로 달려가면 백옥 같은 모란이 동산을 이루어 피어 있다. 꽃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솜씨 좋은 마님이 안주를 준비해 나오신다. * 운수재는 임보 시인댁.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23
네 덕과 내 탓 네 덕과 내 탓 洪 海 里 풀잎도 칼이 되어 일어서다니 세상이 이렇게 된 게 다 나 때문인데 누굴 탓하랴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 다 네 덕인데 우리가 다시 만나면 쉬어갈 만한 곳에서 한세상 살자 네 덕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 네 탓도 아니고 내 덕도 아닌 나라 머물다 갈 만한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면 한세월 살다가 가자.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18
귀가 지쳤다 귀가 지쳤다洪 海 里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까지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한다. 안 들을 소리를 듣고서 이물질 같아서 귀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13
교언영색巧言令色 교언영색巧言令色 洪 海 里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절벽이 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생각하면 눈물겹지 않은 일 어디 있으랴 산이 가로막아도 강물은 흘러가지만 살아 있을 때 사랑하라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가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10
설 설 洪 海 里 한 밤 자고 두 밤 자고 손을 꼽던 날, 때때옷 꼬까신에 밤이 새던 날, 알몸으로 텅 빈 한 해 맞이하던 날, 온몸으로 맞고 싶지 않은 설미雪眉의 날. * 어느새 눈썹이 허옇다. 어느 때부터인가 내겐 설이란 게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기다리던 설날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2024갑진년.01.01. 隱山.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10
보고 듣고[見觀聞聽] 보고 듣고[見觀聞聽] 洪 海 里 보지 않아도 꽃이 보이는 것은 내 안에 꽃이 피어 있어서이고 듣지 않아도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내 안에 새가 살기 때문이고 눈썹은 가장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가장 멀리 있는 우주는 내 속에 있어 가깝기만 하구나.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02
귀가 운다 귀가 운다 洪 海 里 귀도 외로우면 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 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는 오지 않는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