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明 청명淸明 손가락만한 매화 가지 뜰에 꽂은 지 몇 해가 지났던가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오니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발자국 떼지 못하고 청맹과니 멍하니 서 있는데 길을 밝히는 소리 천지가 환하네. (『푸른 느낌표!』2006)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은적암隱寂庵에서 洪 海 里 꽃 지며 피는 이파리도 연하고 고와라 때가 되면 자는 바람에도 봄비처럼 내리는 엷은 듯 붉은 빛 꽃이파리 이파리여 잠깐 머물던 자리 버리고 하릴없이, 혹은 홀연히 오리나무 사이사이로 하르르하르르 내리는 산골짜기 암자터 기..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연꽃바다 암자 한 채 연꽃바다 암자 한 채 1 꽃은 핀 적도 진 적도 없다 은은한 향기 먼 기억으로 번질 뿐 꽃은 피지도 지지도 않는다. 2 가벼운 목숨이 스치고 지나가는 암자의 하늘 조금은 쓸쓸한 물빛이 감돌아 동자승 눈썹 위에 연꽃이 피고 바람이 이슬방울 굴리고 있다. 3 풍경소리 또르르 또르르 울고 있다. (『푸른 느낌표!』2006)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난이여 그대는 난이여 그대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춤인가 닿을 수 없는 정갈한 정신의 벼리인가 뼈를 저며 품어야 할 교훈의 말씀인가 별의, 하늘의, 우주의 투명한 선문답禪問答인가 새벽녘 푸르게 빛 발하는 화두話頭인가 빈혈의 일상을 밝히는 중용中庸의 도道인가 한밤에 홀로 깨어 고뇌해야 할 지고선至高善인..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몸 닿지 않는 사랑 몸 닿지 않는 사랑 洪 海 里 1.청악매靑萼梅 피고 삼복에 맺은 인연 섣달 그믐밤 비밀보다 은밀하니 터뜨린다 톡, 토옥, 톡톡톡! 백자 항아리 빙하의 알 고이 품다 드디어 펼쳐 놓는 향香. 2.지다 눈 쌓인 적막강산寂寞寒山 새벽녘 시리디시린 눈빛을 잃다 너는 푸른 감옥 나는 기꺼이 너..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추상 추상 洪 海 里 할 일 다한 밤나무 꽃이삭 공중에서 교미를 마친 수벌처럼 숭얼숭얼 떨어져 땅에 누웠다 밤느정이 세상사 부질없다고 이별이야, 님과 나의 이별이야 이리저리 얽혀 응어리진 매듭 마지막 혼불로 풀고 있는 것인가 온몸이 꽃으로 무너져 내린 사내 여장한 사내 푸른 치마 거..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소란小蘭 소란小蘭 洪 海 里 계집이야 품는 맛 나긋나긋 고분고분 가냘프고 소슬하고 눈길 한번 던져 놓고 다시 안는 너 차라리 안쓰럽고 그윽하고.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3
능소화 능소화 洪 海 里 언제 바르게 살아 본 적 있었던가 평생 사내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빌어먹을 년! 그래도 그거 하나는 세어서 밤낮없이 그 짓거리로 세월을 낚다 진이 다 빠져 축 늘어져서도 단내를 풍기며 흔들리고 있네. 마음 빼앗기고 몸도 준 사내에게 너 아니면 못 산다고 목을 옥죄고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3
지는 꽃을 보며 지는 꽃을 보며 洪 海 里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속 빈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시집『愛蘭』1998)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3
난초꽃 한 송이 벌다 난초꽃 한 송이 벌다 洪 海 里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 꽃 한 송이 소리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 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