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집『금강초롱』(2013) 119

배꽃

배꽃 洪 海 里 1 바람에 베어지는 달빛의 심장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불꽃이네 호르르 호르르 찰싹이는 은하의 물결. 2 천사들이 살풀이를 추고 있다 춤 끝나고 돌아서서 눈물질 때 폭탄처럼 떨어지는 꽃이파리 그 자리마다 그늘이 파여 …… 3 고요가 겨냥하는 만남을 위하여 배꽃과 배꽃 사이 천사의 눈짓이 이어지고 꽃잎들이 지상을 하얗게 포옹하고 있다 사형집행장의 눈물일지도 몰라. 4 배와 꽃 사이를 시간이 채우고 있어 배꽃은 하나지만 둘이다 나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듯이 시간은 존재 사이에 그렇게 스민다. _ 시집『투명한 슬픔』(1996)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더보기

해당화

해당화 洪 海 里 그해 여름 산사에서 만난 쬐끄마한 계집애 귓불까지 빠알갛게 물든 계집애 절집 해우소 지붕 아래로 해는 뉘엿 떨어지고 헐떡이는 곡두만 어른거렸지 저녁 바람이 조용한 절마당을 쓸고 있을 때 발갛게 물든 풍경소리 파·르·르·파·르·르 흩어지고 있었지 진흙 세상 속으로 환속하고 있었지. (시집『투명한 슬픔』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