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창고 - 치매행致梅行 · 398 추억 창고 - 치매행致梅行 · 398 洪 海 里 하루, 한 달, 한 해, 한평생이 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기억 창고도 추억 창고도 다 비었네 정신만 있으면 살아 있어 천국이지만 이별은 어쨌든 허무하다 추억 쌓기, 기억 정리, 이별 준비, 죽음을 수용하고 나도 마른천둥 마른장마가 계속되는..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23
환자는 애기 - 치매행 致梅行 · 397 환자는 애기 - 치매행致梅行 · 397 洪 海 里 "괜찮아요, 괜찮아요, 선생님! 나이 들면 아기가 된다쟎아요?" 옷을 벗기고 씻기고 갈아입히는 여자 간병인 그래도 부끄러워 자꾸 망서리는 나이 팔십! "환자는 애기예요. 부끄러워 마세요. 가만히 계세요, 괜찮아요!" 그래도 몸을 움츠리고 가리..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21
메멘토 모리 - 치매행致梅行 · 396 메멘토 모리 - 치매행致梅行 · 396 洪 海 里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깊어지고 멀어지는 잠은 죽음인가 깊은 잠 잠포록한 꿈속 눈물이 깊어지고 울음이 소태처럼 쓰네 아낼 실종 신고를 할까 나를 실종 신고를 할까 기억할 게 아무것도 없네 남은 것은 구겨진 백지 한 장 부러진 연필 한..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21
초아흐레 달 - 치매행致梅行 · 395 초아흐레 달 - 치매행致梅行 · 395 洪 海 里 기해己亥 삼월 초아흐레 그믐달도 아닌데 초저녁 마당에 나가 올려다보는 달 두 눈에 원망이 그렁그렁하다 울음이 눈물이 두 눈에 얼굴에 크렁크렁하다 아무것도 아닌 여자 그냥 여자인 여자 혼자 울고 있었다 차마 따라 울지 못했다 형이하학적인 슬픔인가 평생 혼자 살 듯했으니 외로운 걸 알 리가 있겠는가 한때는 타오르는 아궁이였고 차오르는 샘물이었지.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15
노망老妄 - 치매행致梅行 · 394 노망老妄 - 치매행致梅行 · 394 洪 海 里 노망이 무엇인가 로망이라면 좋으련만 노망들고 노망나서 삶의 무게가 다 빠져나갔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무엇인가 다 익은 열매는 떨어져 나가기 마련 세상엔 부부밖에 없다는데 따뜻한 나라는 어디 있는가 기억이 사라진 나라 텅..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10
눈썹잠 -치매행致梅行 · 393 눈썹잠 -치매행致梅行 · 393 洪 海 里 새벽 두 시 기저귀 갈아 주려 불을 켰더니 아내는 혼자서 웃고 있었다 싱글벙글 어둠 속에서 벌써부터 웃고 있었다 "왜 안 자고 있었어?" 그래도 아내는 벙글벙글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아내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 말을 잊은 세상은 어떤 나라..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4.07
흰 그림자 -치매행致梅行 · 392 흰 그림자 -치매행致梅行 · 392 洪 海 里 아내가 하얀 옷을 입고 가고 있었다. 빛나는 흰빛, 그림자도 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로 가고 있었다. 기해년 정월 그믐 경칩의 새벽이었다.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3.11
치매 - 치매행致梅行 · 391 치매 - 치매행致梅行 · 391 洪 海 里 이별은 연습을 해도 여전히 아프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아내는 치매 계단을 껑충껑충 건너뛰었다 "네가 치매를 알아?" "네 아내가, 네 남편이, 네 어머니가, 네 아버지가 너를 몰라본다면!" 의지가지없는 낙엽처럼 조붓한 방에 홀로 누워만 있는 아내 문을 박차고 막무가내 나가려들 때는 얼마나 막막했던가 울어서 될 일 하나 없는데 왜 날마다 속울음을 울어야 하나 연습을 하는 이별도 여전히 아프다. * 감상 날린 생각 한 줌만큼 몸은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몸이 중심을 잃고 허둥대면 누군가 달래 앉힌다. 그중에도 수많은 생각이 날아가고 그가 짓는 웃음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점점 고요 … 고요해지면 속울음도 감출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이별하는 것 … 그 생각만으로 슬퍼진..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2.24
섣달그믐 - 치매행致梅行 · 390 섣달그믐 - 치매행致梅行 · 390 洪 海 里 생각도 다 털어 버리고 마음까지 던져 버렸는지 웃음을 잃어 웃을 줄도 모르고 울음도 잊어 울지도 않습니다 적막이 함께 사는 집 설이라고 애들이 온대서 "오늘은 둘째네가 오고 내일은 큰애네가, 모레는 딸애네가 온대!" 해도 아내는 반히 올려..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2.03
먹는 것도 잊었다 - 치매행致梅行 · 389 먹는 것도 잊었다 - 치매행致梅行 · 389 洪 海 里 다 잊었다 입을 벌리는 것도 빨아들이는 것도 씹기는커녕 삼키는 것도 남은 건 뭔가? 없다! 답답하다 화난다 안쓰럽다 짜증난다 무력감 죄책감 후회감 허탈감 자괴감 먹는 것도 잊고 내게 남겨준 것들!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2019.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