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洪 海 里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허물고, 다시 쌓았다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시 읽기◆ 자벌레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이다. 중간 쌍의 다리가 없어 가늘고 긴 원통형 몸으로 앞부분을 쭉 뻗은 후 꽁무니를 머리 쪽으로 당겨 올리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움직인다. 제 몸의 길이를 다하는 걸음 걸음이 마치 자로 길이를 재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고,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쌓았다 무너뜨리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삶은 움직임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어떤 절명의 한순간도 건너 뛸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자로 재면 잴수록 질곡의 수렁 속에 빠지는 것임을 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