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122

개망초꽃 추억

개망초꽃 추억洪 海 里  막걸리 한잔에 가슴 따숩던어둡고 춥던 육십년대술 마셔 주고 안주 비우는 일로밥벌이하던 적이 있었지청주 서문동 골목길의 막걸리집인심 좋고 몸피 푸짐한 뚱띵이 주모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고자그맣고 음전하던 심한 사투리경상도 계집애좋아한다 말은 못하고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던그냥 그냥 말만 해 달라더니금빛 목걸이를 달아주고 달아난얼굴이 하얗던 계집애가버린 반생이 뜬세상 뜬정이라고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집 나간 며느리 대신손자들 달걀 프라이나 부치고 있는가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시월 들판에도 푸르게 피어나네.-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내게도 푸르던 시절이 있었던가.어디나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마구 꽃을 피워 대는 개망초를 보면저 어둡고 ..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洪 海 里 시詩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생생生生한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행行과 행行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홍해리洪海里인가.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큰 바다를 시의 마을로 삼는 시인. 시의 바다에 영혼을 기투하는 시인. 말과 말 사이에서 말의 위의를 예인하는 시인. 洪海里는 기표다. 그것은 결코 기의일 수 없다. 그것은 말과 말이 역동하는 순수한 시말의 비등점이다. 그것은 시말의 소생점인 바, 행과 행 사이를 마구 요동쳐 “詩의 나라”를 꿈꾸는 시..

살풀이춤

살풀이춤 洪 海 里 풀어라 풀어라 살을 풀어라 반세기 반신불수 버르적거리는 백두산 천지 한 손에 잡고 한라산 백록담 딴 손에 올려놓고 묘향 구월 설악 금강 지리산 가슴에 품어 북한산 도봉산 손을 잡아라 온갖 새들 꽃 속에 노래하고 노루 토끼 다람쥐 겁없이 뛰어노는 비무장지대 우거진 풀밭에 서서 안주 용천 예당 연백 경기평야 나주 김해 호남의 너른 들판에 서서 몸을 던져 풀어라 백두대간 바윗속 흐르는 물길이듯이 죽은 듯이 잠자던 푸나무들 봄이 오면 맥이 뛰어 푸르러지듯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청천강 영산강 압록강 섬진강이 모두 한강으로 한강이 되게 살 풀어라 살 풀어라 혼을 던져 추기고 맺힌 한을 풀어 풀어 백두산 상상봉에 북을 놓고 물보라 푸르게 하늘까지 피우고 한라산 꼭대기에 북을 놓아 사슴 떼 덩실덩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洪 海 里  새가 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새는 시간 속을 앞으로 날아간다.때로는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날개는 뒤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신은 새에게,뒤로 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시집『비밀』(2010, 우리글)  Elise Michel  On ne regarde pas nos blessures passées.On va de l'avant avec notre Dieu !Bonne fête de fin d'année à vous tous ! *Le poème traduit du Coréenpoète : Harry HONG Un oiseau ne vole pas en arrièreUn oiseau ne vole pas que dans l'air. Un oiseau vo..

지족知足

지족知足 洪 海 里 나무는 한 해에 하나의 파문波紋을 제 몸속에 만든다 그것이 나무의 지분知分이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나무는 홀로 자신만의 호수를 조용히 기르는 것이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시란 운명적으로 모든 욕망을 거세시켜 마음의 평정상태에 이르기를 요구하는 것 같다. 제아무리 새롭고, 제아무리 시적 개성을 추구하더라도, 시란 운명적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자족에 이르게 만드는 것 같다. 시란 분명 평화와 사랑의 언어임에 틀림없다. 평정심. 적멸. 혹은 고요. 분명 시적 언어의 임무는 아름다운 시말에만 있지 않다. 분명 시적 언어가 지향하여야만 하는 그 운명적 테제는 천명을 알고 그것에 맞추어 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데 있다. 홍해리 시인의 「지족知足」은 시의 처음이 아니..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洪 海 里 단단한 어둠이 밤을 내리찍고 있다 허공에 걸려 있는 칠흑의 도끼, 밤은 비명을 치며 깨어지고 빛나는 적막이 눈을 말똥처럼 뜨고 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새벽 세 시 洪 海 里 새벽 세 시는 탄생과 죽음의 경계선 늘 깨어 있는 적막과 암흑이 피를 돌게 하고 생명의 불꽃이 일어 하늘과 땅을 동시에 가르키는 사유의 등을 밝혀 새 생명의 울음소리를 맞고 산고의 진통을 씻는 하루의 허리 생生의 중심中心인 찰나와 영원의 새벽 세 시는 새로 피어나는 꽃을 보며 홀로 지고 있는 마지막 불꽃도 아름답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