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빠지다 - 치매행致梅行 · 265 밑이 빠지다 - 치매행致梅行 · 265 洪 海 里 아내가 알약을 삼키지 못해 막자와 유발乳鉢을 사왔는데 약알을 넣고 몇 번 찧고 빻다 보니 밑이 빠져 버렸다 쓴 약을 쓴 줄도 모르고 받아먹는 아내 "쓰지?" 해도 그냥 웃고 마는 아내 약이 쓴지 단지 아는지 모르는지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25
마지막 편지 - 치매행致梅行 · 264 마지막 편지 - 치매행致梅行 · 264 洪 海 里 마음 다 주었기로 할 말 없을까. 천금보다 무거운 물 든 나 뭇 잎 한 장 떨 어 진 다. 꿈이나 눈부실까 내 주변만 맴돌다, 아내는 지쳤는지 다 내려놓고 나서, 마지막 가슴으로 찍는 말 무언의 '할말없음!' * 무엇이 남았을까. 다 덜어주고 남은 말..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23
금쪽같은 - 치매행致梅行 · 263 금쪽같은 - 치매행致梅行 · 263 洪 海 里 세월은 막무가내 흘러가는데 가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어 마음 열고 멀리 바라다보니 빛이 환하다, 꽃도 피었다 틈이 있어야 볕이 들고 귀가 열려야 파도가 밀려오듯 아내여, 입도 띄고 귀도 벌리기를, 금쪽같은 인생 감쪽같이 사라지나니 하루 ..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20
죄 받을 말 - 치매행致梅行 · 262 죄받을 말 - 치매행致梅行 · 262 洪 海 里 아픈 아내 두고 먼저 가겠다는 말 앓는 아내를 두고 죽고 싶다는 말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왜 자꾸 이러는지 어쩌자고 점점 약해지는지 삶의 안돌이 지돌이를 지나면서 다물다물 쌓이는 가슴속 시름들 뉘게 안다미씌워서야 ..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14
세월이 약이니까 - 치매행致梅行 · 261 세월이 약이니까 - 치매행致梅行 · 261 洪 海 里 철석같은 약속도 세월이 가면 바래지고 만다 네가 아니면 못 산다 해놓고 너 없어도 잘만 살고 있느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세월이 좀먹고 세월없을 때도 되는 일은 되는 세상 세월을 만나야 독이 약이 될까 색이 바래듯 물이 바래듯 ..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13
한천寒天 - 치매행치매행 · 260 한천寒天 - 치매행致梅行 · 260 洪 海 里 강을 안고 날아가는 쇠기러기야 오늘 밤은 내게 와서 고이 쉬거라 하늘가에 흘러가는 날개의 물결 기럭기럭 우는 소리 은하에 차다.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11
맑은 적막 - 치매행致梅行 · 259 맑은 적막 - 치매행致梅行 · 259 洪 海 里 겨울 산은 높이가 있어 맑기 그지없고 깊이가 있어 적막하기 짝이 없다. 다 내려놓은 나무들 산을 꼭 껴안고 있어 산은 춥지 않다. 천년이, 만년이, 하루였으니 달빛은 얼마나 무량한가. 눈도 멀고 귀도 먹어 좌망坐忘하고 있는 겨울 산 올올兀兀..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11
한여름날의 꿈 - 치매행致梅行 · 258 한여름날의 꿈 - 치매행致梅行 · 258 洪 海 里 풋고추 날된장에 막걸리 한잔 원두막 소나기에 낮잠 한나절 아야라 한잔에 곯아떨어지니 이런 호사 또 어디 있으랴 조까지로 취했다 욕하지 마라 까짓 참외 수박 따가거나 말거나 아내여, 단 하루, 하루만이라도 양귀비 양귀비꽃처럼 피어나..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11
아흔아홉 - 치매행致梅行 · 257 아흔아홉 - 치매행致梅行 · 257 洪 海 里 사랑은 기다리는 것, 구름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운상누각雲上樓閣이든 사상누각沙上樓閣이면 어떠랴. 백百보다 아흔아홉[白]이 더 크고 깊다 흰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이어서 온갖 색 다 들어 있다. 아내는 언제나 하양, 집을 지어도 백에서 하..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09
쬐끄마한 사랑 - 치매행致梅行 · 256 쬐끄마한 사랑 - 치매행致梅行 · 256 洪 海 里 애기똥풀이 향기롭게 웃고 있다 먹고 싸고, 먹고 자는, 스스로 슬픔을 키우는 것이 또는 기쁨이 되어 주려는 것이 차라리 지천이어서 환한 것일까 천년 하늘 아래 한 번 짓는 집인데 지구를 들어올리는 쬐끄마한 사랑 자글자글, 무량한 봄빛 ..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