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풍경 또 하나 - 치매행致梅行 · 275 병실 풍경 또 하나 - 치매행致梅行 · 275 洪 海 里 "아야아, 아야, 아야, 나 죽는다!" 앞 병상 노파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내가 용돈이나 벌러 나왔지 사명감? 웃긴다, 웃겨!" 하는 간병인 환자야 잠을 자든 말든 저희들끼리 피자를 시켜 휴게실로 가고 제 부모라도 저럴까 지금쯤 휴게실..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14
환청 또는 이명 - 치매행致梅行 · 274 환청 또는 이명 - 치매행致梅行 · 274 洪 海 里 병원에 온 지 엿새째 눈을 뜨고 멍하니 바라보는 아내 "나 알아, 나 알아 보겠어?" "응!" 하는 소리 들릴락 말락 환청인지 이명인지 내 귀를 울립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아내의 목소리인가 그만도 고마워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작년 가을 ..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12
병실 풍경 - 치매행致梅行 · 273 병실 풍경 - 치매행致梅行 · 273 洪 海 里 간병인 네댓이 모여 말꽃을 피운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지겨워 죽겠다나 어느 병원은 이렇다나 저렇다나 환자야 아프다고 낑낑대든 말든 병실이야 떠나가든 말든 그러거나 말거나 떠들 만큼 떠들었으니 나는 잔다, 고로, 나는 간병인이다.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11
못할 말 - 치매행致梅行 · 272 못할 말 - 치매행致梅行 · 272 洪 海 里 이런저런 검사를 받는 동안 아파하는 아내 "참아, 참아!" 하는 말 차마 못 할 말. "아파, 아파?" 물어도 아픈 줄도 모르는데 해서는 안 되는 말 "참아, 참아!" 다섯 시간 동안 검사를 받고 나서 녹초가 된 아내, 눈 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08
늙마의 집 - 치매행致梅行 · 271 늙마의 집 - 치매행致梅行 · 271 洪 海 里 혼자 사는 집 반절은 빈 집 아내를 병원에 두고 온 날 밤 집의 반이 빈 반집이 되었다 단잠을 자던 집 잠도 달아나 버렸다 허공중에 맴도는 삶 아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절반이 빈 집을 두고 말없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08
늙마의 노래 - 치매행致梅行 · 270 늙마의 노래 - 치매행致梅行 · 270 洪 海 里 아내를 병원에 두고 돌아와 그간 입었던 땀에 전 옷을 빱니다 이 옷을 아내가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또 입혀 줘야지 하며 빨래를 넙니다 아내의 껍질 같은 옷이 줄을 잡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지른 만국기처럼 하..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07
늙마의 길 - 치매행致梅行 · 269 늙마의 길 - 치매행致梅行 · 269 洪 海 里 나이 들어도 나일 먹어도 기쁜 것은 기쁘고 슬픈 건 슬픔이듯 늙어도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여전히 싫기 마련입니다 오늘 아내가 중환자실에 들었습니다 앵앵대는 구급차를 타고 당당히 한일병원에 입성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이런저런 검..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06
멍하다 - 치매행致梅行 · 268 멍하다 치매행致梅行 · 268 洪 海 里 "나, 나갔다 올께!" 해도 아내는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합니다 나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돌아섭니다 아내의 말 없는 말을 번역할 수가 없어 나는 반역자처럼 아내 곁을 매암돌다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집 안의 해인 '우리집사람', 나의 아내여 어찌하..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8.02
이제 그만 - 치매행致梅行 · 267 이제 그만 - 치매행致梅行 · 267 洪 海 里 주변에서, 이제 그만, 아내를 요양시설에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 곁에 있어 주는 것도 감사한 일 이제껏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빈손으로 떠나보낼 수는..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30
씹어 삼키다 - 치매행致梅行 · 266 씹어 삼키다 - 치매행致梅行 · 266 洪 海 里 평생 누굴 한번 씹어 본 적 없는데 아내는 음식물 씹는 걸 잊었습니다 남의 물건 꿀꺽해 본 일 없는데도 물 삼키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눈시울이 뜨거워 소리없이 흐느끼다 눈물을..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201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