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한잔! 한 잔 한잔! 洪 海 里 아침부터 눈이 온다고 종일토록 술을 마시네. 그 사람 가고 나서 처음 홀로 앉아서, 눈은 이미 그쳤는데 마냥 마시네. 해질녘 하늘이 무거워 또 다시 눈이 내리네. * 庚子 동짓달 초나흘!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마당에 눈이 싸라기처럼 뿌려져 있다. 인삼주를 한 잔, 한 잔 기울이다 취하고 말았다. 제하여 「한 잔 한잔」이다. '한 잔'과 '한잔'은 다르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2.18
꽃이 핀다고 꽃이 핀다고 洪 海 里 꽃이 핀다고 그냥 봄이겠느냐 네가 없으면 봄도 한겨울이니 사랑이여 오늘도 해 뜨듯이 달 오르듯 별이 반짝 피어나거라 네가 있어 따뜻한 세상 피는 꽃 아프게 하지 말거라.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2.14
정을 떼다 정을 떼다 洪 海 里 떼어 버린다고 쉬이 떨어지는 게 어찌 정이랴마는 숨을 놓고 세상을 떠날 때 슬픔은 웃비걷다 소나기 휘몰아치나 모질어지는 것은 이승에서의 인연을 풀고자 함이니 문뜩 생각나면 울컥 눈물 나지만 다 놓고 끊어라 가는 이나 남은 이나 다 버려야 가벼이 갈 수 있나니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게 해 다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2.10
단현斷絃 단현斷絃 洪 海 里 줄 하나 끊어지니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물 흐르듯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두 집 건너 살아라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노량으로 가야지.- 월간 《우리詩》 2021. 12월호. * 백조(고니) : http://blog.daum.net/ch66da에서옮김.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1.26
소묘 소묘 洪 海 里 장례식장 한구석홀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내 아내를 먼저 보냈다 했다 눈썹에 소금꽃이 피고어깨가 젖어 옆구리가 시렵게 흔들리고등이 노을빛으로 휘청휘청했다. 용담꽃 洪 海 里 비어 있는 마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묻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같이 이냥 서럽고 쓸쓸한 이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 용담龍膽 洪 海 里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달빛에 젖은 몸이 허..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1.18
아내의 선물 아내의 선물 洪 海 里 아내가 갔습니다시집 네 권을 내게 선물로 주고. 『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에는시「다 저녁때 - 치매행致梅行 · 1」로부터 150편의 시가 안치되어 있고, 『매화에 이르는 길』(2017, 도서출판 움)엔 「해질녘 -치매행致梅行 · 151」로부터230번까지 80편의 시가 들어 있고,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도서출판 움) 안에는「오늘은 눈썹도 천근이다 - 치매행致梅行 · 231」로부터 330번까지100편의 작품이 시창고를 채웠고,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놀북) 속에는 「치과에서 - 치매행致梅行 · 331」을 비롯하여 421번까지 이별 연습을 하는 9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남천 열매가 빨갛게 익고단풍나무 물든 잎이 우수수우수수 지고 있는낙엽..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1.15
마지막 화두 마지막 화두 洪 海 里 여러 해 전밀차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설 때내가 살아서살아서 내가이 문을 나설 수 있을까 했었는데 중환자실에 아내를 두고 나와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돌아올 수 있을까 했는데돌아오지 못하고2020년 11월 12일 새벽 두 시 반끝내 아내는 갔다 새벽 두 시 퍼뜩 잠이 깨"사는 게 무엇인가숨을 쉬는 것인가밥을 먹는 것인가보고 듣고 말하는 것인가"왜 이런 생각이 문뜩 떠오를까 하고끼적이고 있는데급히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아내가 내게 던져준 마지막 화두였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가 보지 않은 길이라서처음 가는 마지막 길이라서아내가 혼자서 어떻게 갈지 걱정이 된다 "부디 잘 가요, 여보이승에서 못난 사람 만나 고생 많았어요"아내 가는 길에 흰 국화 한 송이 뿌리니눈물도 한 덩이 뚝 떨어진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1.15
깨고 싶은 꿈같이 깨고 싶은 꿈같이 洪 海 里 너는 최선을 다 했는가 뭐라 대답할 것인가 깨고 싶은 꿈 같은 일 아닌가 애절하고 애잔한 눈빛 마지막으로 빛나는 별빛처럼이나 애처로운 눈빛 이제 보면 다시는 못 볼 듯이 그렇게 붙잡는 눈빛이라니 몰래 훔쳐보는 듯 애틋한 훔쳐보는 듯이 잔잔한 그늘 같은 눈빛으로 어린 아기가 엄마랑 눈을 맞추듯 이제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듯 한숨 자라 해도 잠들면 다시는 못 볼 듯이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구월 스무닷새 새벽달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적적막막하다. 11월 8일 아내가 39도까지 열이 올라 구급차를 타고 을지병원 음압격리병실에 함께 갇혔다. 온갖 검사를 하고 나서 COVID-19 음성 판정이 나와 다음날 일반병실로 옮겼다. 세상에 이 무슨 ..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0.11.10